<br />&ldquo;5&middot;18민주화운동 당시 집단 발포 전과 발포 직후 사진을 광주일보가 최초로 공개하면서 집단 발포를 재구성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dquo;<br /><br />송선태 5&middot;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은 22일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42년만에 공개한 광주일보 자료사진의 의미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br /><br />송 위원장은 &ldquo;광주일보가 전달한 사진들은 진상 규명에도 큰 족적을 남기게 될 그런 의미 있는 사진들이다&rdquo;면서 &ldquo;광주일보의 협조로 인해 진상조사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rdquo;고 말했다.<br />&nbsp;<br />송 위원장은 조사위의 조사기간 연장에 대한 입장도 내비쳤다.<br /><br />그는 &ldquo;5&middot;18 관련 총 21개 법정 과제, 325개 세부 과제, 216개의 조사 신청 과제에 대한 전체의 진도를 보면 현재 약 50%를 넘었는데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rdquo;이라면서 &ldquo;내부적으로 위원들 간 연장 안에 대한 의견을 조율 중에 있다&rdquo;고 말했다.<br /><br />그는 &ldquo;광주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사 범위나 대상이 엄청 늘어났다&rdquo;며 &ldquo;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조사기한인 마지막 1년을 쓰더라도 일부 과제에선 완벽하게 조사가 끝날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rdquo;고 강조했다.<br /><br />&ldquo;특히 2만여 명이 넘는 가해자들 중 100여 명의 핵심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지만 이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거짓과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rdquo;면서 &ldquo;1995년 검찰 조사보다 더 후퇴된 진술을 내놓고 있다&rdquo;고 했다.<br />&nbsp;<br />이에 가해 책임자들에 대한 진실을 재구성하려면 현장에 투입됐던 장교와 사병들을 상대로 한 상향식 조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br /><br />진상조사위는 2000명 정도의 계엄군으로부터 유의미한 진술을 받아보겠다는 전수조사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진술에 응한 당시 계엄군 1800여명 중 10%인 약 180명만 유의미한 진술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br /><br />하지만 그는 &ldquo;광주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의 협조 덕분에 많은 계엄군들이 자발적으로 진술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rdquo;고 강조했다.<br /><br />송 위원장은 &ldquo;용서를 구하고 싶어 하는 계엄군들을 비롯해 각종 제보 또는 진술들이 늘어나고 있다&rdquo;면서 &ldquo;이 기회를 연장 해서라도 반드시 이런 제보들을 확보해 완벽한 진상규명을 이루겠다&rdquo;고 각오를 다졌다.<br /><br />그는 또 &ldquo;진상조사위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모든 인력이 계엄군 진술 확보를 위해서 각 과별 별도 팀을 구성해 전국적으로 뛰어다니고 있다&rdquo;고 덧붙였다.<br /><br />한편, 5&middot;18진상조사위는 2019년 12월 출범했고, 특별법 개정으로 총 4년(2+1+1년)간의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br /><br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br /><b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br /><br /><br />원문보기 :&nbsp;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55896800740237006
22일 광주일보가 5&middot;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와 함께 공개한 두 장의 사진은 5&middot;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자와 암매장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한 집단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퇴각하면서 저격수들이 시민들을 정조준해 사격했다는 제보자들의 증인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br /><br />이번에 공개된 사진 중에선 무엇보다도 태극기에 싸여 픽업트럭에 실려 있는 시신 1구가 눈길을 끈다.<br /><br />진상조사위는 이 사진이 지난 2월 진상조사위에 &lsquo;리어카에 실려있는 시신 1구에 대한 제보&rsquo;를 한 제보자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소중한 자료라고 밝혔다.<br /><br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제보자 A(당시 22세)씨는 1980년 5월 21일 오후 2시께 광주시 동구 대인동에서 태극기에 덮힌채 리어카로 실려있는 시신 1구를 발견했다고 한다. A씨는 이후 친구와 함께 금남로 인근에서 &lsquo;삼성전자&rsquo;라고 쓰인 포니 픽업 차량에 이 시신을 옮겨 싣고 산수동 쪽으로 운전하면서 시민들의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고 한다.<br /><br />A씨는 시신과 함께 짐칸에 앉아서 구호 등을 외치다 오후 4시께 옛 전남도청 앞 시위에 합류하기 위해 대인동의 한 개인병원 앞에 차량을 세워두고 이동했다고 진술했다. 병원앞이어서 병원 관계자들이 시신을 처리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br /><br />A씨는 시신을 자세히 확인하진 못했지만 태극기 밖으로 나와 있는 구두를 보고 희생자가 30대 남성이며 피를 흘린 흔적이 있고 픽업 차량 짐칸에 실렸다는 점에서 큰 키는 아닌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진상조사위는 다만 A씨가 대인동 개인병원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지만 광주일보 사진이 제보자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br /><br />금남로 4가에 혼자 덩그러니 쓰러져 있는 시민의 사진도 최초로 공개됐다.<br /><br />사진상으로는 쓰러져 있는 시민의 생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진상조사위는 저격병에 의한 희생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쓰러져 있는 시민을 두고 아무도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지켜 보고만 있다는 점에서다.<br /><br />진상조사위는 1980년 5월 21일 당시 계엄군의 발포를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br /><br />1단계는 오후 1시께 벌어진 집단발포이고, 이후 시민들이 재집결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네 곳의 건물 옥상에서 이뤄진 저격병에 의한 발포가 2단계다. 마지막 세번째는 광주외곽으로 퇴각명령이 떨어져 퇴각하는 과정에서의 발포이다.<br /><br />진상조사위는 광주일보의 이 사진이 두번째 단계의 발포를 확인해 주는 자료로 판단하고 당시 사망자 또는 부상자 전수조사를 통해 교차 검증을 할 계획이다.<br /><br />신동일 진상조사위 조사3팀장은 &ldquo;5월 21일은 집단발포가 일어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당일 희생자가 찍힌 현장사진은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rdquo;면서 &ldquo;이번 광주일보의 제공사진들은 제보자들의 증언을 교차 검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진실규명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dquo;고 말했다.<br /><br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br /><br /><br />원문보기 :&nbsp;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55896800740234006
1980년 5월21일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이 집단 발포 전 장갑차 기관총에 실탄을 장전해놓은 모습이 담긴 사진이 뒤늦게 발견됐다. 5&middot;18진상규명조사위원회(5&middot;18조사위)는 이 사진을 자위권(자기방어) 차원의 발포였다는 계엄군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주요 증거로 꼽고 있다.<br /><br />5&middot;18조사위는 22일 &lt;광주일보&gt;로부터 받은 5&middot;18 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3600여장 중 일부 사진을 공개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옛 &lt;전남일보&gt;와 &lt;전남매일&gt;이 합쳐져 탄생한 &lt;광주일보&gt;는 최근 보관하고 있던 필름 자료에서 5&middot;18 관련 사진을 발굴한 것으로 전해졌다.<br /><br />조사위는 1980년 5월21일 오전 금남로를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며 계엄군 장갑차를 찍은 사진 중 계엄군 장갑차 기관총(캘리버 50)에 실탄을 장착한 모습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조사위는 사진을 찍은 장소는 당시 &lt;전남일보&gt; 사옥이 있던 전일빌딩 상층으로, 그림자 방향으로 미뤄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2시간 전인 오전 11시께로 추정했다. 사진 촬영자는 밝혀지지 않았다.<br /><br />조사위는 이를 두고 &lsquo;당시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으나 시민의 차량 돌진 공격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31사단으로부터 경계용 실탄을 넘겨받아 발포했다&rsquo;는 신군부 주장의 허위성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앞서 11공수여단 62대대 소속 김아무개 하사와 김아무개 일병은 &ldquo;캘리버50에 실탄을 걸어놓았다&rdquo;고 조사위에 증언하기도 했다. 조사위는 &ldquo;그동안 1980년 5월21일 오전 10~11시 계엄군의 M113 장갑차의 12.7㎜ 기관총에 탄통이 장착된 사진은 확보했지만 실탄 장착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번 사진에서 탄통의 실탄이 식별돼 실탄 사전 분배 사실을 명백히 확인했다&rdquo;고 밝혔다.<br /><br />이재의 5&middot;18기념재단 비상임 연구원은 &ldquo;장갑차 사진을 보면 5&middot;18 당시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을 등진 채 지금의 전일빌딩 앞 금남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장갑차 기관총을 장전하고 있었다는 계엄군의 증언과 기관총에 탄통이 장착된 사진은 확인된 적 있지만 실탄까지 확인된 사진은 이번이 처음이라 연구가치가 높다&rdquo;고 말했다.<br /><br />발견된 사진 중에는 태극기로 감싼 주검이 픽업트럭에 실려 있는 사진과 금남로4가 사거리에 시민이 쓰러져 있는 사진도 있었다. 조사위는 피격 정황 등 피해자 조사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br /><br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br /><br /><br />원문보기 :&nbsp;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048143.html
2022.07
01
제62차 전원위원회 회의
위원회 서울,광주사무소
전원위원회 안건 심의 및 의결
2022.06
27
제61차 전원위원회 회의
위원회 서울,광주사무소
전원위원회 안건 심의 및 의결
2022.06
13
제60차 전원위원회 회의
위원회 서울,광주사무소
전원위원회 안건 심의 및 의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