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김혜인 기자 = &quot;선배의 민주&middot;인권&middot;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가슴에 새기고 5&middot;18헌법 전문 수록과 진상 규명을 위해 나아가겠습니다.&quot;<br /><br />민주주의와 5&middot;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 평생을 헌신한 고(故) 정동년 선생의 1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br /><br />광주&middot;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는 29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middot;18민주묘지 2묘역에서 &#39;고 정동년 선생 1주기 추모제&#39;를 열었다.<br /><br />이날 추모식에는 고 정 선생의 부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 민주화운동 동지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br /><br />또 고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도 추모에 참석해 5&middot;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힘써온 고 정 선생의 넋을 기렸다.<br /><br />추모식은 묵념, 연보낭독, 인사말, 추모사, 추모가, 유족 인사, 재송정동년선생기념사업회 준비위원장 인사 순으로 진행됐다.<br /><br />민주화운동 동지들은 5&middot;18정신 계승 의지 굳건히 하며 &#39;님을 위한 행진곡&#39;을 불렀다.<br /><br />추모제 참석자들은 정 선생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을 받들어 5&middot;18정신 계승과 진상 규명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br /><br />송선태 5&middot;18진상규명조사위원장은 &quot;&#39;학살자 정권의 열린 공간이니 한 눈 팔지 말고 국회의 진상조사를 끝까지 완수하라&#39;는 명령은 지금도 유효하다&quot;며 &quot;이 다짐을 오월영령과 형님(고 정동년 선생) 앞에서 약속한다&quot;고 밝혔다.<br /><br />강기정 광주시장은 &quot;광주의 5월을 위해 생을 바치고 잠든 영령께 저희는 큰 빚을 졌고 감사한 마음을 늘 갖는다&quot;며 &quot;5&middot;18 헌법전문 수록과 진실 규명이라는 큰 싸움이 남아있다.빚을 갚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겠다&quot;고 말했다.<br /><br />유족은 추모에 참석한 전우원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5&middot;18폄훼를 막기 위해 광주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br /><br />정 선생의 아들은 &quot;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사과하러 오시는 이 젊은 청년을 남들이 뭐라고 해도 저는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quot;고 전했다.<br /><br />또 &quot;5&middot;18은 누구의 것도 아니며 대한민국 국민과 광주시민의 것이다. 내부에서 단합해야만이 5&middot;18을 폄훼하는 세력들이 힘을 잃을 수 있다&quot;고 말했다.<br /><br />1964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정동년 선생은 1965년 한일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이끌다 구속&middot;제적당했다. 1980년 37세 만학도로 복학했으나 &#39;5&middot;18내란수괴&#39;혐의로 옥고를 치렀다.<br /><br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에서는 신군부의 고문 수사가 사실이라고 폭로했고, 1994년에는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35명을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로 고소해 처벌을 이끌어냈다.<br /><br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14대 5&middot;18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br /><br /><br />원문보기:&nbsp;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1884602?sid=102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5&middot;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일본의 수집가 고이데 유타카씨로부터 1980년 5월 당시 일본에서 보도된 5&middot;18 관련 신문 스크랩 자료들을 기증받았다고 25일 밝혔다.<br /><br />기증받은 자료들은 당시 아사히 신문과 주니치 신문, 아카하타 신문 등지에서 추려낸 5&middot;18 보도 기사 180여 점이다.<br /><br />기증받은 자료 중에는 5월 23일 광주시민들이 광주시 외곽에 차단선을 구축, 계엄군 전차의 진입을 막는 사진이 실린 기사 등도 포함됐다.<br /><br />조사위는 자료를 분석해 해외 언론의 5&middot;18 왜곡 여부 등을 확인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br /><br />안종철 조사위 부위원장은 &quot;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5&middot;18 관련 자료기증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quot;고 당부했다.<br /><br />원문보기:&nbsp;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1880786
&quot;돈 워리! 돈 워리! 아임 미스터 김. 레츠 고 광주, 어? 오케이&quot;<br /><br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세계에 알린 &#39;푸른 눈의 목격자&#39; 였습니다. 그가 개인택시 기사 김사복과 함께 취재를 마치고 광주를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검문에 걸립니다. 그런데 계엄군 중사는 트렁크에서 서울 번호판과 카메라를 발견하고도 못 본 척해줍니다.<br /><br />&quot;보내 줘. 보내라고!&quot;<br /><br />참혹한 현장에는 늘 의사들이 있었습니다.&nbsp;<br /><br />&quot;그렇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자는 거야? 당장 구급차 대기시켜!&quot;<br /><br />격전지 전남도청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병원에서 밤낮없이 진료하던 반상진 원장은 두 번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대학생을 구타하는 계엄군에게 &quot;내 병원 환자인데 오늘 꼭 치료받아야 한다&quot;고 속여 몰래 피신시켰습니다. 낙오해 부상한 공수부대원이 시민군에게 잡혀왔을 땐, 수술부터 한 뒤 집 안방에 숨겼습니다. 시민군들에게는 &quot;잠깐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quot;고 했습니다. 그는 공수부대원을 사흘 동안 보호하다 사복을 갈아입혀 부대로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계엄군은 일찍 세상을 떴지요.<br /><br />어제 초로의 남자가 광주 삼일의원에 들어서자마자 노의사에게 큰절부터 올렸습니다. 43년 전 광주로 진입하다 시위대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중상을 입었던 계엄군 상병, 박윤수 씨였습니다. 그때 이름 모를 시민군이 &quot;병원부터 보내 치료를 받게 하자&quot;며 격앙된 시위대를 달랬습니다. 그렇게 옮겨진 병원이 삼일의원이었지요.<br /><br />의사 정영일 씨는 응급 치료로 박 씨의 의식을 되살린 뒤 위층 자택에 일주일 동안 숨겨놓고 보살폈습니다. 충분히 회복하자 사복을 입혀 부대로 복귀시켰지요.<br /><br />다만 박 씨가 잃어버린 왼쪽 귀의 청력은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른쪽 귀로 이야기를 듣느라 이렇게 모로 앉아 있습니다. 43년 만의 재회는 5&middot;18 진상조사위가 박 씨에 관한 기록과 신원을 추적해 이뤄졌습니다. 그는 &quot;이제야 생명의 은인을 찾아뵙게 돼 죄송하다&quot;고 했습니다. &quot;광주를 원망하기보다는 나를 구해준 시민들께 감사한다&quot;고 했지요.<br /><br />옛말에 &#39;잠자는 새는 쏘지 않는다&#39;고 했습니다. 잡고 잡히는 운명일지라도, 무방비 상태에 놓인 생명은 어질게 지켜주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39;사람 살 곳은 골골이 있다&#39;는 속담도 있지요. 아무리 어려운 처지여도 도와주는 사람은 어디나 있다는 뜻입니다.<br /><br />극한상황에서 인간 사랑의 꽃을 피워내는, 인연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광주는 이렇게 하나씩 둘씩 따스한 치유와 화해를 쌓아가며 아픈 역사를 고귀한 헌신으로 보듬어내고 있습니다.<br /><br />5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39;광주, 또 하나의 화해&#39; 였습니다.<br /><br />원문보기:&nbsp;https://n.news.naver.com/article/448/0000410941